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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교실 참관기]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_이용재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5.04.01 BoardLang.text_hits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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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5년 3월(통권 61호)

[2025년 제14회 한국사교실 참관기]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이용재(한양대)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이 타히티에 도착해 그린 그림 중 하나다. 지치고 병들어 타히티에 도착한 고갱은 원주민들의 모습을 빌어 자신이 삶에 가진 의문을 풀어낸다. 대학원에 합격하고 나서도 한참을 방황했던 것 같다. 일천한 지식은 어떻게 다시 체계화하고 학비는 어디에서 조달하며 적당히 써서 낸 연구계획서는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내가 진정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될 수 있기는 할까? 산재한 걱정을 곱씹으면서 한국사교실에 참가 신청을 넣었다. 유감스럽게도 2월까지였던 학원 조교 근무와 시간이 겹쳐 3교시까지는 듣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내 대학원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1. 1일차,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역사를 연구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에 이끌려 사학과에 왔고, 학부 과정을 거치면서도 이것이 진짜 내 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1학년이 되었을 때는 마냥 즐거웠다. 늦깎이 신입생이었지만 겁 없이 기초 수업들을 듣고, 발표 수업을 위한 ppt를 작성할 때도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나’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임할 수 있었다. 지금 보면 한참 부족한 물건들이었지만 그땐 그랬다.
 
 저학년 시절 가장 벽을 느끼게 했던 것은 프로그래밍을 위시한 정보통신 기술이었다. 한양대학교는 문이과를 막론하고 프로그래밍 관련 수업을 수강해야 졸업할 수 있는데, 이런 수업들은 대개 1, 2학년에 집중되어 있었다. 당연히 제대로 하기는커녕 과제를 어덯게든 만들어서 제출하는 게 고작이었다. 세 수업 모두 B+였다. 공통과목이기에 점수가 후하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사실상 밑바닥에서 기어다닌 셈이다. 솔직히 말해서 당장 시험에 고통받던 입장에서는 왜 해야 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변수들과 데이터들을 저주하며 키보드를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1일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수업은 한국 고대사 연구의 과거, 현재, 미래였다. 시대적으로는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셈이었지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데이터를 시각화하여 역사학에 적용하는 방법론으로서 디지털 역사학을 접목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후회가 들기도 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데이터 수업을 조금 더 열심히 듣지 않았을까. 그래도 이제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최신 기술과 접목되지 못랄 것 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2. 2일차, 우리는 무엇인가?
 
 3학년과 4학년은 방황의 시기였다. 특히 3학년이 그랬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보다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발효물이 가져다주는 일시적 즐거움에 빠져 대충대충 학교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3학년이 끝나고 나니 남은 것은 불어난 몸무게와 답보 상태인 지성이었다. 졸업 후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당찬 포부를 가지고 교문을 들어선 새내기의 자리에 퍼질 대로 퍼진 중량감 있는 덩어리만이 남아있었다. 변화해야 했다.
 
 4학년은 관성에 취해 나태해진 나와의 싸움이었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대학원이라는 목표를 세운 만큼 그에 걸맞는 역량을 기르고자 했다. 첫 단추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었다. 결과는 2급이었고, 꽤나 자존심이 상했다. 다행인 것은 그런 경험이 좌절감이 아니라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점이리라.
 
 글을 쓰는 방식도 변화해야 했다. 학부 때 했던, 논문 몇 장만 대충 찾아 받아쓰는 글쓰기에서 벗어나야 했다. 2학기가 되어서는 조악하나마 1차 사료를 찾아 나만의 결론을 어떻게든 찾아가는 글쓰기를 연습했다. 10장이 조금 넘는, 짧디 짧은 논문이었지만 초고를 내고 첨삭을 받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천천히 단단해져가는 글을 볼 수 있었다. 다시금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이었다. 교수님의 피드백이 뼈아플수록 지적받은 부분을 고치고 받는 칭찬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2일차의 ‘한국현대사 연구의 현황과 전망’이 4학년 때의 노력과 닿아있는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자사료관에서 자료를 찾는 방법을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키워드를 사용해서 어떤 자료를 찾아 분류해야 하는지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수업을 들으며 논문작성 수업 때 경험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새마을운동을 주제로 쓰면서 경제조사연보와 실행지침을 몇 번이고 훑었다. 국한문혼용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며 하나하나 정보를 찾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앞으로의 연구 과정에서도 이런 즐거움을 계속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3. 후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제 정식으로 대학원생이 되었다. 조교 업무도 점점 익숙해져 간다. 물론 아직 어떤 연구를 내 힘으로 해야 할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주어진 텍스트를 읽고 필기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펜촉의 휘갈김에서 오늘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저녁 10시는 되어야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을 타지만 이상하게도 피로보다는 내일에 대한 기대가 크게 느껴진다. 내일 연구실에서는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가 기다려진다.
 
 대학원에 오기 전 느낀 막연한 두려움도 막상 오고 나니 뒷전으로 밀려난다. 어릴 적 역사책을 잃으며 느꼈던 희열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반 년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면 얼마나 많은 배움의 기쁨이 쌓여있을지 궁금하다. 한 줄 한 줄 새로 배운 내용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그 중 가장 가슴뛰는 것들만 모아 논문으로 집대성할 수 있길 바란다.
 
 영국의 작가 톨킨은 말했다.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길을 잃은 것은 아니라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사료의 바다 속에서 수평선을 바라본다. 저 너머에 언젠가 육지가 보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