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 되었을 무렵 두 갈래 길을 두고 큰 고민에 빠졌다. 많은 또래 친구들과 같이 취업/창업 활동에 뛰어들 것인가, 더 많은 배움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것인가! 군대를 위한 2년 휴학, 공부와 휴식을 위한 1년 휴학, 스물의 거의 끝자락에 이른 나에게는 중대한 고민이었다. 더 많은 배움과 공부를 하고 싶으면서도, 당장 자력으로 돈을 벌어 여행도 다니고 집안에도 보탬이 되고 싶기도 했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랬는데, 항산은커녕 지출이 더 많은 대학원 생활일 것을 알면서도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것은, 내 마음이 그쪽으로 더 기울었기 때문이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학부논문이지만 밤잠을 설쳐가며 논문도 적어 보고, 많은 연구서와 4서를 읽으며 공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대학원을 진학하였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더 무겁고, 불안하고, 두려워졌다. 굴지의 기업에 취직해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는 친구들과 비교되는 내 모습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혹여 누가 비싼 안주를 시키자고 할까, 너무 많은 술값이 나오면 어쩔까 홀로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에, ‘내 나이 스물일곱에는 돈을 벌어 부모님께 드렸는데, 너는 학비를 보태어 달라 하는구나 하하!’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을 건네시는 부모님의 말씀에, 막상 진학은 했지만 아직 공부가 너무도 부족하고 아는 게 없어 막막한 내 앞날에, 나는 밤에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자신감은 점점 줄어만 갔다.
계속해서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번민하던 중, 먼저 대학원에 진학한 가장 친했던 대학교 동기 그리고 내가 진학한 대학원의 선배님께서 ‘한국역사연구회의 예비-초보 전문가를 위한 한국사 교실’을 추천해주셨다. 각 시대사별 수업과 논문 작성법 등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대학원 입학을 앞두었거나 희망하는 신진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이틀간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언과 배움을 얻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이나마 내 마음의 불안을 달랠 수 있기를 바라고 수업을 신청하였다.
공덕동 연구회에 도착하여 첫 번째로 놀란 점은 상당히 많은 수의 예비 연구자들이 해당 프로그램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많은 동료 예비 연구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음에 나는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 자체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놀란 점은 수업을 진행해주시는 선생님들이 모두 열정적이시고 역사를 정말 사랑하고 계시다는 점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딱딱한 분위기의 수업이 아니라, 후배들을 위한 따듯한 마음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열정적인 강의를 진행해주셨다. 자조적인 장난으로, ‘배고픈 일’, ‘힘든 길’ 등의 농담은 건네셨지만 모두 당신들이 하고 계신 일에 진심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길은 정말 역사라는 학문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이 있지 않은 한 오기 힘든 길이다. 그렇기에, 나와 같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이 곳에 와 같은 수업을 듣는 동료 예비 연구자들이 많았다는 점과 수업을 진행해주셨던 선생님들 모두 마음을 다해 역사를 공부하고 계셨다는 점이 내게는 가장 큰 위안이었다.
각 시대사 선생님들께서는 시대별 쟁점과 약사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셨고, 이에 더해 후배들에게 많은 조언과 노하우를 전수해주셨다. 특히, 정대훈 선생님께서 한국사DB등 정말 유용한 정보수집방법을 전달해주셨고 국사편찬위원회의 다양한 굿즈(에코백, 서적 등)을 나누어주셨다. 정신적인 배움과 안정을 위해 찾아온 곳에서 물질적인 선물도 함께 받아갈 줄은 몰랐다! 또, 류기현 선생님께서는 연구자들의 과업인 ‘논문’ 작성법에 대해 많은 조언을 남겨주셨다. ‘최대한 많은 메모를 하고 읽은 자료들을 기록으로 남겨두라’는 조언이 무엇보다 크게 와닿았다. 마지막으로, 수업 이후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가지며 예비 연구자끼리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또 선배 연구자 선생님들께 조언도 들으며 맛있는 식사도 함께할 수 있었다.
나는 앎이 짧고 배움이 부족하여 역사적 지식이나 글쓰기 능력은 한참 부족하다. 또, 성정이 약하고 걱정이 습관이라 아직 완전히 나의 불안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정말 중요한 것 한 가지만큼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고,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그 비결이다. 나는 나의 마음이 시켜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사랑하는 역사를 더 공부하기로 하였고, 이날 한국사교실에 참여하였다. 한국사교실에 참여함으로써 나와 같이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많고, 언제든 후학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을 선학들이 많이 계심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길이지만, 마음이 시킨다면, 얼마든지 걸어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앞으로의 한국사교실에 참여할 예비연구자 분들도 하고싶은 일을 하기로 결정한 그 용기가 가장 대단한 것임을, 함께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