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으로서 역사를 연구하리라는 생각을 품고 학부에 들어온 뒤, 눈 깜짝할 사이 4년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졸업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일이 되었고, 학석사연계과정을 통해 대학원에 적(籍)을 올리게 된 것 역시 멀지 않은 미래가 되었다. 전공 시대에 대한 고민도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 그러나 연구자로서 어떤 시야를 갖추고 역사에 접근해야할지, 또한 어떤 역량이 필요하며 원하는 자료에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돈할 시간이 필요했다. 학부생에서 연구자로 넘어가는 짧막한 과도기 동안, 역사를 대상으로 한 개인적인 흥미와 관심을 연구자의 문제의식으로 전환해야한다는 조바심도 없지는 않았다. 그간 학부에서 지도하셨던 교수님들이 내게 건네었던 조언은 ‘덕후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오로지 흥미에 기반해 특정한 시대와 지역에 얽매인 채 역사를 본다면, 전문적인 연구자의 길로부터 한없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부 1학년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지만, 졸업 이후 석사과정에 들어선 뒤에도 자주 되뇌이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다양한 시대·분야의 연구지형을 개관하는 한국사교실을 매개로, 학계의 연구동향에 접근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했다. 내가 고대사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언제나 편견에 갇힌 이야기를 건넸다. 어려운 연구라며 뜯어말리기도 했고, 상상의 영역이 사실의 영역을 지배하기에 어떤 학설이든 허용된다는 식의 논지를 설파하기도 했다. 고대사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사료에 기반하여 연구를 진행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떤 학설이든 허용’된다는 허무주의적인 결론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내가 연구하고자 하는 시대사가 마주한 문제의식은 무엇인지, 연구방법론 상의 현황과 과제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나아가 다른 시대사의 현황과 비교해본다면, 오늘날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보다 총체적으로 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와 더불어, 이번 한국사교실의 주제에 DB가 언급되었던 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어떤 자료가 어느 정도까지 정리되었고, 그렇게 정리된 자료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를 접할 수 있을 듯 했다.
2년 전인 2022년경에 비대면으로 참석했던 한국사교실과 달리, 이번에는 직접 한국역사연구회가 소재한 곳에 모여 참관할 수 있었다. 처음 마주한 공간은 낯설었지만,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역사와 현실????이 빼곡하게 차 있는 책장을 보니 그제서야 한국역사연구회의 공간에 발을 들인 것이 실감이 났다. 이어서 이틀에 걸쳐 한국사교실이 진행되었다. 첫날에는 고대사·조선사·근대사의 연구현황에 관한 강의가 이루어졌고, 일정이 완료된 뒤에는 정겨운 뒷풀이가 있었다. 각기 다른 시대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결국은 역사학에 뜻을 품은 이들과의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는 시간은 귀중했다. 이튿날에 진행된 강의는 고려사와 현대사의 연구현황, 마지막으로 역사학 논문 작성에 관한 것이었다. 개인적인 사유로 둘째날의 강의에는 끝까지 참석하지 못했지만, 전체적인 구성이나 각 강의에서 개관한 내용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각 강의를 맡은 선생님들이 제시한 다양한 경험과 조언 역시 실제 연구자들이 접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이해하는데 유용했기에, 가벼이 흘려들을 수 없었다.
이틀에 걸친 한국사교실에서 여러 강의를 들었지만, 전공이 고대사인만큼 임동민 선생님의 ‘한국 고대사 연구의 과거, 현재, 미래’가 가장 깊이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고대사의 범위와 자료부터 시작해서 디지털 역사학에서의 고대사 연구에 이르기까지, 고대사 연구자들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일목요연하게 둘러볼 수 있는 강의였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고대사의 사료는 희소한만큼 다양하다. 문헌 형태의 사료가 전하는 사실이 많지 않기에, 고고자료나 한국사 바깥의 자료 혹은 다른 학문 분야의 조력을 구하기도 한다. 이는 곧 고대사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으로도 연결된다. 한문은 물론 일본어와 중국어까지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고고학의 논리에도 어둡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민족과 발전, 실증 세 가지의 축을 중심으로 살펴본 고대사 연구의 동향 역시 압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고대사를 전공하겠다는 막연한 선언 이후로, 연구사를 더듬어가면서도 세밀하게 따지지 않았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근대 이후의 역사학, 특히 고대사 연구에서 ‘민족’은 너무도 당연한 개념이었다. 최근에는 민족주의 역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나거나 이를 지양하자는 논의가 지속되고 있지만, ‘민족’이 어떤 맥락과 목적 속에서 논의되었는지는 지속해서 검토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근대적 시선에서 규정된 ‘민족’을 고대사에서 이식할 수는 없으며, 오늘날의 문제의식 속에서 고대사 속 ‘민족’의 정의를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 ‘발전’은 오랜 기간 동안 고대사의 전개를 파악하는 주된 축으로 기능해왔고, ‘실증’은 엄밀한 사료비판에 특화된 고대사의 방법론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민족’만큼이나 두 개념의 역기능 역시 지속해서 고민하고 수정해야 할 문제다. 발전을 논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존재들과 고대인의 삶은 꾸준히 조명되어야 하고, 실증은 기본적인 역사학의 방법론으로서 받아들이되 역사의 주관성에 대한 고민 역시 지속되어야 한다. 과거 고대사 연구의 주된 축과 테마들은 오늘날의 연구에서 끊임없이 반성되고 재검토되고 있었다. 과거 연구의 답습을 지양하되, 연구자가 서 있는 학문적·사회적 지평의 문제인식을 고대사 연구 속에서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교실의 강의와 별개로, 한국역사연구회에서 마련한 연구반의 소개 역시 인상적이었다. 특히 고대사 분과에 상당히 세분화된 연구반이 마련된 점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각 연구반이 다루는 연구 분야의 구체성에서도 그러했지만, 함께 모여 사료를 보고 특정한 주제를 공부하는 경험이 드물었던 학부 시절과의 차이점에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역사에 주된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를 들어 진학한 국사학과에서 학부 시절을 보냈으나, 강의와 별개로 시간을 내어 역사에 접근하려는 모임은 드물었다. 대학원 진학 이후에 한국역사연구회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하게 마련된 연구반의 존재는 물론, 한국사교실을 통해 모인 역사 전공을 희망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반갑고도 정겨웠다. 각자 전공하는 시기를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고민이나 걱정도 공유할 수 있었던 점도 반가웠다.
참관 이전에 품었던 의문과 고민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고, 일정 부분에서는 더 복잡한 고민을 얻어가기도 했던 이틀이었다. 그러나 갓 입문한 전공자가 역사를 다룰 때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각 강의에서 다뤄진 시대사와 그 문제의식 등은 다양했지만, 서로 연결되는 지점 역시 존재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진행되지 않으며 연구 또한 마찬가지인 듯 싶다. 남들보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많은 학부생이 한순간에 전문적인 연구자로 변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순간의 변신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반성과 고민일 것이다. 조바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능하면 장기적인 관점을 잃지 않는 연구자로 성장해나가고 싶다. 너무 급박하게 스스로를 몰아치지 않으면서도, 한국사교실을 통해 경험한 고민과 생각을 앞으로의 연구 속에서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