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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문을 말한다] 학생층의 삼일운동 참여와 조선총독부의 대응_최우석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5.04.02 BoardLang.text_hits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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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5년 3월(통권 61호)

[나의 논문을 말한다] 
 
 

학생층의 삼일운동 참여와 조선총독부의 대응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24.08))

 

 

 


최우석(근대사분과)

 
 
 
 
왜 다시 학생 연구인가?
 
 박사 논문을 쓰던 당시, 논문심사위원 선생님 중 한 분께 받았던 질문이 있다. 삼일운동과 관련해서 민중 연구를 하면 좋으련만 왜 다시 엘리트 연구를 하느냐는 물음이셨다. 그때 그분께 정확히 답변드리지는 못 했지만, 필자 스스로에게는 “학생을 엘리트로 보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라는 물음이 있었다.
 
 삼일운동에 참여한 주체들 중 학생의 중요성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다. 운동 초기에 주도적이었고, 전파에 역할을 했다는 것은 다수가 동의하고 상식적인 이해였다. 하지만 삼일운동 속 학생을 단일한 존재로 그리는 것에는 의문이 따랐다. 학생이란 학력과 나이에 따라 그들 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분명히 위계화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장유유서’의 문화가 강한 한국사회에서는 그 관계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삼일운동에 참여한 학생을 하나의 주체로 파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였다.
 
 당대에도 학력에 따라 학생들을 서로 다른 존재들로 파악하였다. 1910~20년대에는 적어도 중등학교 이상은 나와야 ‘지식계급’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중등학교 이상의 재학생과 졸업생은 ‘사회 엘리트’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보통학교 학생들은 ‘엘리트’보다도 민중에 더 가까운 존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층의 삼일운동을 분석하는 가운데 학생들을 가르는 기준도 보통학교 학생과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으로 나누는 것을 기본 기준점으로 잡았다.
 
 
삼일운동 연구사 속에서의 학생의 위치
 
 그동안의 삼일운동 연구는 크게 민족 상층부 중심의 연구 경향과 민중 중심의 연구 경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흔히 교과서에서 표현하는 ‘전민족적‧거족적 민족운동’이라는 표현은 민족 상층부 중심의 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에 반발한 민중 중심의 연구 경향의 역사도 깊다. 식민지기 사회주의자들의 삼일운동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정점은 1989년 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했던 학술대회, 그 결과물인 『3‧1민족해방운동 연구』가 대표적이다. 『3‧1민족해방운동 연구』는 1990년대 이후 수많은 연구에 영향을 끼쳤지만,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점차적으로 분석틀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해나갔다. 최근의 삼일운동 연구는 주체별‧계급적 연구보다는 지역 단위 연구로만 주로 이루어졌다.
 

 이 같은 연구사 속에서 다뤄진 학생 역시 ‘지식인‧청년’가 함께 묶어 중층적으로 분석되기도 하였지만, 학생 자체를 중층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는 없었다. 그리고 학생운동에 집중한 연구들 다수는 민족 상층부 중심 연구 경향 아래에서는 민족대표와 함께 했고 민족대표가 먼저 체포된 이후에는 그들을 대신한 지도세력이자 전위대, 운동의 주력부대로 이해해왔다. 이 같은 서술 속에서는 왜 이들이 운동의 주체로 나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가진 운동의 가능성과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마지막으로는 삼일운동을 거치면서 학생들이 겪게 된 처벌과정 양상도 세밀하게 분석되지 못 했다.
 
 
다시 삼일운동의 중층적 연구를 위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 중에 가장 큰 고민은 삼일운동의 중층성을 과거처럼 주체의 영역에만 한정해서 분석할 것인가 하는 지점이었다. 주체 내부 뿐 아니라, 시간‧공간의 영역에서도 중층적 요소가 작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공간은 제국과 식민지, 도시와 비도시라는 두 층위로 구분이 가능할 것이고, 시간은 파리강화회의와 같은 세계사적 흐름과 학교 학기 진행과 같은 일상적 흐름, 일제의 삼일운동 탄압정책과 같은 비일상적 흐름이 중층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체‧공간‧시간의 중층적 구분들을 논문에서 그대로 나열해버리면 분석과 서술이 너무 어렵다는 생각에 오랜 시간 고민하였다. 그러다 착안한 것이 학생 주체와 공간의 결합이었다. ‘도시학생’과 ‘비도시학생’이라는 구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도시학생’이라는 구분은 중등학교 이상 학생 전부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 삼기 위해 설정하였다. 물론 ‘도시학생’ 내부에도 보통학교 학생들이 일부 끼어들어와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보통학교 학생 대다수는 ‘비도시학생’이라는 명칭에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도시학생’ 내부에서도 운동의 주체성이나 이동성 등을 감안하기 위하여 ‘도시출신 학생’과 ‘도시유학생’이라는 개념을 추가적으로 설정하여 분석대상으로 삼고자 하였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고민한 대목은 학생층 내부의 젠더적 차이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여학생’은 희귀한 존재였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현모양처 양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교육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여성에 대해서는 시민적‧공민적인 접근보다도 가정 내 역할에 국한된 접근이 강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여학생으로서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식민지 조선을 벗어나 외부로의 유학만이 선택지였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여성 자체가 대단히 소수였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삼일운동에 참여한 여학생들의 모습은 남학생의 활동양상이나 선택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고, 다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삼일운동을 탄압하던 ‘일제’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접근하고자 하였다. 기존의 ‘탄압정책’은 헌병경찰과 군대의 물리적 탄압에 주로 집중되어 있었고, 재판을 통한 사법적 탄압과 매일신보와 친일파들의 선전전을 통한 사상적 회유 등이 주로 다루어져 왔다. 여기에 조선총독부 내무부 내 학무국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에 대한 행정적 탄압을 주요하게 다루려고 했고, 물리적 탄압과 사법적 탄압의 측면에서도 학생들에 대해서만 특별히 행해진 방식들의 내용과 다른 집단에 대한 처벌과의 차이를 살피고자 하였다.
 
 
남겨진 과제: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가 준 은혜와 한계
 
 
 
 
 많이 부족한 논문이지만, 논문을 완성하는데 있어 일등공신이면서도 논문을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게 했던 장본인이 있다. 바로 국사편찬위원회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19년 삼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를 출범하였다. 그동안의 연구들이 지역 단위의 삼일운동의 세세한 사실관계를 재확인하는데 머물던 것을 삼일운동 전체에 대한 양적 연구로 전환시킬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준 것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정보값들이 연구자가 당장 활용하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들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에, 연구자 스스로 모든 사건 정보를 다시금 검토하고 재규정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지난한 과정도 뒤따랐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는 이에 대한 전면적 재작업까지는 불가능했고, 다만 ‘학생’ 참가 여부에 대한 사항만을 재검토하여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에서 운동주체를 학생을 설정할 경우 파악되는 사건정보 총 370건보다 106건 많은 476건의 사건을 본 논문의 주요 분석대상 사건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현재의 박사학위논문은 여전히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할 부분 투성이고, 향후에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연구방법론에 대해서 논의해야만 할 의문점들을 쌓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이 연구는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의 수혜를 입은 첫 번째 박사학위논문이자, 아직 미완성의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계속해서 보완해 완성해나가는 것이 현재 내 첫 번째 과제로 주어져 있다.